일상의 기록/주간잡담

[2022] 2월의 1

헤르메스_Hermes 2022. 2. 6. 06:14

2월이 됐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지난 2주다.

난생 처음으로 혼자 1주일간 여행을 갔다왔고, 이후 설명절에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오면서 기분좋은 휴식을 오랫동안 가졌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바다여행

2021년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내고 다시 2022년을 열심히 살아가려니, 왜인지 모르게 에너지가 안나고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하는 일에 집중도 안되고 그에 따라 매일매일 별다른 성과없이 시간만 축내는 일상이 반복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친거다.

다사다난한 지난학기를 보내면서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은 탓에 그 반동으로 학기가 끝나고 무기력증이 쎄게 온거다. 

종강과 동시에 긴장마저 풀어진 나머지 무슨 일을 해도 손에 안잡히더라.

학교에 출근해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한 시간보다, 눈만 껌뻑이며 맹하게 앉아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눈 뜬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

이래선 안되는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머리로는 이걸 알지만 이미 산송장이 되어버린 몸과 마음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금방 다시 바람빠진 풍선마냥 너덜너덜해졌다.

무기력 -> 죄책감 -> 다짐 -> 그리고 다시 무기력,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노답인 상황.

 

해결책이 필요했다.

박살나버린 몸과 마음을 다시 정상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근본적인 회복 루틴이 절실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일 정도 모든 일을 잠시 놓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지난 1년간 아득바득 살며 그 부산물로 내 몸과 마음에 쌓인 노폐물들을 정화하고, 이를 통해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바다를 가자!

바다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안좋아하지만, 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겨울바다를 실컷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힐링하고 싶었다.

매서운 바다바람 맞으면서 파도치는 겨울바다를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 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1주일간 전국 동해바다를 여행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별다른 고민없이 실행에 옮겼다.

1주일의 바다여행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당장 내일로 티켓을 끊고, 동해바다 기차여행 길에 올랐다.

1월 23일 ~ 1월 28일 총 5박 6일동안 오직 바다를 보기위한 여행을 갔다 온 것이다.

행선지는 다음과 같다.

1일차 - 강원도 동해

2일차 - 강원도 정동진 / 강릉

3일차 - 경북 포항

4일차 - 경북 경주

5일차 - 경남 거제

말 그대로 전국의 동해바다를 싹 쓸고 내려가는 코스다.

 

'바다'라는 테마를 잡고 출발한 여행이다보니, 각각의 여행지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은 명료했다. 

무작정 바다를 찾아가 멍때리고 있는 것.

각 여행지마다 유명한 관광지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 차치하고 오로지 바다만을 찾아갔다.

랜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이동을 대중교통과 도보에 의존해야 했다.

그마저도 서울과는 달리 버스 노선도 적고 배차간격도 상당하기에, 사실상 한 지역 내에서 대부분의 이동을 도보로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정말 많이 걸었다.

5박 6일간의 여행동안 총 103,270 걸음, 85.5km를 걸었다. 미친 사람마냥 걸었다는 소리다.

 

5박 6일의 기간동안 여행하며 정말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걱정 하나 없이 순수하게 행복했던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무나 황홀하고 꿈 같은 시간.

여행이 끝나고 1주가 조금 넘게 지난 이 시점에도, 이 여행을 떠올리면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걱정을 덜어내고 기분을 전환시키려 간 여행이었는데, 이 정도면 목표 초과달성이다. 정말 잘 갔다왔다.

 

혼자가는 여행은 이번이 난생 처음이다.

보통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을 갔지 혼자 이렇게 대책없이 가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실행에 옮긴 것이다.

혼자가는 여행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일정에 있어서 굉장히 자유로운 것은 장점이다. 모든 일정을 나의 기호에 맞게 설정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별도의 상의없이 얼마든지 갈아 엎을수도 있다.

마음가는대로 무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천성을 타고난 극성 P이기 때문에, 여행 중간에도 실시간으로 일정이 바뀐다.

애초에 여행 계획이라는 거를 잘 안 세운다. 숙소 정도만 예약해놓고 그 이외의 것들은 그때가서 생각하는 타입.

때문에 여행지에서 계획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그냥 도착해서 주변을 슥 훑어보고 흥미로워 보이는 곳으로 간다.

시각 정보에 굉장히 민감하기에, 뭔가 화려하고 멋있거나 반짝반짝 빛나는게 있으면 길을 가다가도 방향을 틀어 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절대 못참는다.

때문에 일정의 자유로움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엄청난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우선 먹는 게 아쉽다.

다행히도 입이 짧은 편이 아니기에, 어지간한 음식점에서 메인메뉴 2개정도 먹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도, 여럿이서 왔으면 좀 더 많은 음식을 시켜 여러가지 맛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내 나름 정말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물리적 한계로 인해 미처 못 먹어본 것들이 있다. 이게 지붕에 걸려있는 굴비마냥 사람 눈 앞에 아른거리며 사람 애타게 만드는데, 정말 슬펐다.

또 하나는 사진.

혼자 간 여행이기에, 당연히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

길가다가 부탁을 드릴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매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풍경사진만 엄청나게 찍었다. 셀카는 안찍었다. 아름다운 풍경속에 서있는 내 모습을 찍고 싶은건데, 셀카로는 이 맛이 안 살지 않나.

마지막으로는 심심하다.

심심하라고 간 혼자 여행에서 심심하다고 말하는 게 뭔 짓이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심심하다.

2일차 까지는 크게 못느꼈는데, 3일차가 되니 슬슬 심심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좋은 기분, 행복한 감정을 같이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나 바다여행이기에 대부분 단체로 온 사람이 많더라. 커플, 친구들, 가족 등등. 도대체 커플은 왜이렇게 많은거냐. 다들 어디서 만난거야.

 

다행히 만난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5박 6일 일정이기에 숙소를 총 5개를 잡았는데 모두 게스트하우스였다.

때문에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기에 그마저도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아 많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다.

다만 2일차 강릉과 3일차 포항, 그리고 5일차 거제에서 나처럼 혼자 오신 게스트분들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화 상대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 들어 굉장히 반갑고 재밌었다.

인간과의 대화가 오랜만인지라 본의 아니게 굉장히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술까지 마셔서 말이 더 많아졌다 ㅋㅋ.

다행히 모두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고, 덕분에 적적한 혼자여행 중 좋은 활력소가 되었다.

특히나 포항에서는 나를 포함해 총 4명의 게스트 분들을 만났는데, 새벽까지 수다를 떨고 다음날 점심에 물회까지 같이 먹으러 갔다. 

처음만난 사람들끼리 이렇게 여행에서 친해질 수가 있구나, 굉장히 신선했다.

게하에서 뵌 모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새해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상으로

꿈만 같았던, 꿈인 것처럼 행복했던 바다여행이 끝나고, 설 연휴도 끝나고, 이제는 진짜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긴 휴가가 끝나서 아쉬운 감도 있지만, 이 시간들을 너무 행복하고 알차게 보낸 것 같아 기분이 굉장히 좋다.

깊은 무기력감에서 완전히 회복한 것 같고, 에너지도 넘치는 기분이다.

다시 꿈과 목표를 향해 정진할 에너지를 얻은 것 같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갔다온 여행에서, 그 이상의 것들을 얻어온 것 같아 굉장히 만족스럽다.

덕분에 기분좋은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힘차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하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박살난 사람을 이렇게 회복시켜주다니. 

앞으로 최소 1년에 한 번은 이렇게 대차게 여행을 갔다와야겠다. 슬슬 지칠때쯤 정말 좋은 재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고, 그 이상의 에너지와 긍정적 감정들을 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졸업하고 가야겠다. 그때까지 화이팅.

여행 기록

주마다 쓰는 일기 이외에, 이번 여행을 따로 사진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볼까 생각이 든다.

굉장히 많은 사진들을 찍어두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일기로 정리한다면 많은 내용을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귀찮다.

사진들 정리는 언제하고, 글은 또 언제써. 5박 6일이니까 1일당 하나씩 글을 쓴다 했을 때 6개의 글을 써야한다.

그래도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들을 다시 기억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굉장히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다. 기록을 해두면, 나중에 다시 이 순간들을 추억하기 용이할테니까.

시간적 여유가 어느정도 있다고 판단된다면 빠른 시일내로 기록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여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사진일기 형식으로 기록해두는 블로그를 몇 번 본적이 있다.

지인의 블로그도 있었고, 아예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도 있었고, 지인인듯 지인아닌 지인같은 사람의 블로그도 있었고 뭐 기타 등등..

내가 블로그를 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도 저절로 관심이 생기더라.

아무튼 그렇게 사진일기로 자신의 일상을 매번 기록해두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 귀찮고 많은 작업들을 언제 다 하는걸까.

아마 블로그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겠지 싶은데, 그래서 대단한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기록에 진심인 분들. 어느정도는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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